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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위버섹슈얼 아니면 순정남

쿠욱키 2005. 11. 26. 09:49

"웃지마! 딴 놈한테 손목 잡혀서 그렇게 웃지 말라고!" 여자한테 큰소리 치는 이 남자, 이상하게 밉지가 않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거친 듯 강한 이미지로 윤재희(전도연)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상현(김주혁)의 캐릭터는 연일 화제에 올랐다. 드라마 [이 죽일 놈의 사랑]의 강복구(정지훈)도 여자에게 살뜰하게 말하는 법이 없는 격투기 선수이자 보디가드지만, 어김없이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갑자기 등장해 평범하고 친숙한 남자 주인공들을 제치고 브라운관을 장악한 강한 남자들, 이들을 우리는 ‘위버섹슈얼(Ubersexual)’이라 부른다.

 

위버섹슈얼, 매력적인 강한 남자들

 

‘위버섹슈얼’은 미국의 사회 트렌드 분석가 매리언 샐즈먼의 저서 [남자들의 미래 The Future of Man]에 소개되면서 부각되기 시작한 말이다. ‘위버’는 ‘더 높은, 더 나은’을 뜻하는 독일어로 ‘위버섹슈얼’은 남성성이 강조된 섹시함을 의미한다. 이들이 기존의 터프가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재벌 2세였던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박신양)는 무뚝뚝하면서도 여성을 사로잡는 다정함이 있었지만, 체력이 강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패션70’s]의 장빈(천정명)은 여자를 향한 마음만은 일편단심인 터프가이였지만, 듬직하다기보다는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캐릭터였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진헌(현빈)은 매력적인 외모와 경제력,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떼를 쓰고 잘 우기는 연약함을 보였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나 여성의 도움이 없으면 자기 힘만으론 살아가기 힘든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위버섹슈얼은 이와 다르다. 위버섹슈얼은 꽃미남으로 통하는 메트로섹슈얼의 연약함에 반하여 일어난 트렌드인만큼 강인한 남성성을 기본으로 한다. 메트로섹슈얼이 외모나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위버섹슈얼의 중심은 '태도'다. 지극히 남성적이면서도 마초적이어선 안되며, 여성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한다. 복장에 있어선, 행동하기 편하고 실용적이며 단순한 스타일을 지향한다.

 

요즘 위버섹슈얼이 환영받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최근 여성들이 남성에게 바라는 한 이상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라하의 연인]에서 윤재희는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갖춰진 인물이다. 이미 신데렐라의 지위에 오른 그녀에게 더 이상 백마 탄 왕자는 필요 없다. 물론 그녀의 머리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남성우월론자도 필요 없다. 본성은 강하고 거칠지만 그녀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데 있어서만은 순진하고 매너 좋은, 그녀가 어려움에 처하면 금전이나 지위가 아닌 자신의 몸을 던져 구해줄 수 있는 그녀만의 남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요즘 한국사회에서 부상하고 있는 남성 캐릭터, 위버섹슈얼이다.

 

스크린 누비는 막무가내 순정남들

 

반면, 최근 한국영화계는 순정남이 평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의 사랑을 얻기 위한 남성의 순애보는 영화의 소재로 종종 쓰여왔지만, 요즘처럼 대부분의 멜로드라마에 헌신적이고 막무가내인 순정파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위해 맹렬히 돌진하는 [너는 내 운명]의 석중(황정민)과 [소년, 천국에 가다]의 네모(박해일), 사랑하는 여자 앞에선 한없이 약해져 입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 [야수와 미녀]의 동건(류승범), [나의 결혼원정기]의 만택(정재영),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김주혁)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최근 한국영화의 복고와 신파 조류에 필수적인 캐릭터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순정적으로 매달리는 주체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친구나 가족, 동료와의 대화에선 거침 없이 말하는 인물임에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약한 남자가 된다. 이들은 사랑하는 마음에 여성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도 하지만, 힘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여자를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다해 여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이 연이어 한국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신세기 영웅, 순정남들이다.

 

위버섹슈얼과 순정남이 동시에 사랑 받고 있는 최근의 한국 사회.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원하는 두 개의 남성성을 양분해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없는 사회에서 오직 필요한 것은 멋지고 이상적인 남성성이라는 것이 하나, 한편 순수와 진심이 사라져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오직 사랑만으로 여성을 감싸는 남성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위버섹슈얼과 순정남, 이들은 당분한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며 한국 대중문화의 최전선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박서은 기자 (baeksuk78@nate.com)